화개전투에 참전한 이성수 학도병, 하늘의 별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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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2-04-19조회수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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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전투에 참전한 이성수 학도병, 하늘의 별이 되다.
□ 6·25전쟁 시 화개전투에 참전한 이성수 학도병이 지난 4월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순천매산중학교 출신의 고인은 6·25전쟁 중 화개전투에 참전한 생존 학도병이었다.
□ 1950년 7월 4일, 그는 친구들과 학교를 떠나 혈서지원 후 전장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무기를 보급받고 화개전투 참전 이후 낙동강 지구 전투 등 전국 각지의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며 용감히 조국을 지켜냈다.
□ 6·25전쟁 참전 이후 월남전에 참전하고 예비역 대령으로 예편한 후 국방부 교수를 지내며 여생을 보낸 그는 작년 6월, 모교인 순천매산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며 나라사랑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 호남호국기념관은 현재 호남 학도병을 주제로 ‘잊혀진 영웅, 호남 학도병’ 특별기획전을 개최 중인데 화개전투에 참전한 학도병들의 입대 전부터, 전투과정, 해산 이후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중 이성수 학도병이 남긴 기증자료로는 ‘순천매산중학교 학도병의 혈서지원 기념사진’, ‘학도병 군 복무 사진’, ‘을지무공훈장’ 등 총 42점이다.
□ 호남지역 180여명의 동기들과 함께 혈서지원한 이성수 학도병은 1950년 7월 13일 15연대에 자원입대하였다. 9일간의 짧은 훈련을 받은 후, 소총 1자루를 들고 전투에 나섰고 7월 25일 새벽, 화개 탑리고지에서 첫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여기 동기 중에 박00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냥 포탄이 직통 떨어져가지고 죽고, 옆에 있는 친구들도 사방이 막 이렇게 쓰러져서 넘어져 있는데 … (동기) 얼굴이 파랗게 되어가지고 “야 성수야, 나 좀 살려라”라고 했어. 그래서 그 친구를 봤는데 이미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파랗게 됐어요. 그 살려달라는 소리를 버리고, 또 옆에 사방에 살려달라는 소리를 버리고 할 수 없이 도망을 쳤어요. 돌아서가지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 이성수 학도병은 당시 기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친구들을 버리고 후퇴해야만 했던 미안한 감정을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항상 가지고 살았다. 첫 전투의 아픔이 생생했던 그는, 1950년 9월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 중 부상입은 동기를 등에 업고 뛰어 내려왔다고 한다.
□ 이후 이성수 학도병은 6사단에 배속되어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었지만, 중공군의 진격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장교로 임관한 뒤, 월남에 파병되어 9사단 연대장을 역임하고 육군부사관학교 교장을 거쳐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 2022년 4월 13일, 이성수 학도병은 끝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을지무공훈장과 미국 동성훈장을 수여 받은 이성수 학도병은 내 가족, 내 이웃, 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이성수 학도병처럼 학도병으로 입대한 이들은 대략 35,000~40,000명 정도로 추산되나 그들의 활약상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 호남호국기념관은 이성수 학도병과 호남지역 학도병들의 활약상을 담은 특별기획전을 오는 9월 30일까지 전시할 계획이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그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이룩되었다.
□ 2022년, 또 한 분의 전쟁영웅이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이성수 학도병은 떠나갔지만, 뜨거웠던 그의 가슴과 활동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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